
“분명 대화도 하고 혼자 집에 갔다는데, 저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술을 마신 다음 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당황스럽습니다.
기억이 없으니 의식을 잃었던 것 같은데, 주변에서는 멀쩡하게 행동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안녕하세요. 김규현 변호사입니다.
블랙아웃과 패싱아웃을 구분할 때는 ‘나중에 기억하는가’와 ‘당시 의식이 있었는가’를 나누어 봐야 합니다.
두 용어는 음주 후 상태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지만, 같은 의미는 아닙니다.
이 차이를 알아두면 자신의 음주 경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관련 사건이나 판결을 접할 때 생기는 오해도 줄일 수 있습니다.

블랙아웃과 패싱아웃의 차이
블랙아웃: 기억 형성의 장애
블랙아웃은 술을 마시는 동안 있었던 일이 기억으로 제대로 저장되지 않아, 이후 그 시간을 떠올리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흔히 말하는 ‘필름이 끊겼다’는 경험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기억이 없더라도 당시에는 깨어 있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상대방의 질문에 답하거나 이동했지만, 그 경험이 장기기억으로 남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미 저장된 기억을 잠시 꺼내지 못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패싱아웃: 의식 소실
음주 상황에서 패싱아웃은 과도한 음주로 잠에 빠지거나 의식을 잃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깨어 있으면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지 못하는 블랙아웃과 구별됩니다.
다만 일상에서 사용하는 표현만으로 당시 상태를 정확히 진단할 수는 없습니다.
“완전히 뻗었다”는 말이 단순히 잠들었다는 뜻인지, 깨워도 반응하지 않았다는 뜻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 구분 | 블랙아웃 | 패싱아웃 |
|---|---|---|
| 핵심 특징 | 새로운 기억 형성의 장애 | 잠에 빠지거나 의식 소실 |
| 당시 상태 | 깨어 있을 수 있음 | 각성·의식 상태의 저하 |
| 겉으로 보이는 모습 | 대화나 이동이 가능할 수 있음 | 쓰러지거나 반응이 떨어질 수 있음 |
이 표는 개념을 비교하기 위한 것입니다.
실제 상태를 겉모습만으로 둘 중 하나에 맞춰 판단하는 기준은 아닙니다.

기억이 없어도 가능한 행동
블랙아웃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행동과 기억이 항상 함께 남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직접 계산까지 했는데 기억이 없을 수 있나요?”라는 의문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당시 행동했다는 사실과, 그 행동을 나중에 기억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블랙아웃 중에는 대화를 이어가거나 익숙한 행동을 하더라도 이후 기억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구분해야 합니다.
행동이 가능했다는 사실이 판단력까지 정상적이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알코올은 기억뿐 아니라 주의력, 충동 조절, 판단과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줍니다.
주변 사람이 보기에 대화가 가능했다고 해서 취한 정도를 가볍게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부분적인 기억과 완전한 공백
기억이 끊기는 양상도 모두 같지는 않습니다.
중간중간 장면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고, 일정 시간 전체가 비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단편적인 블랙아웃에서는 일부 기억이 남지만, 전면적인 블랙아웃에서는 해당 시간의 기억이 형성되지 않아 일반적으로 되찾기 어렵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떠오른다”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당시 일을 정리해야 한다면 다음 세 가지를 나누어 적는 편이 좋습니다.
- 직접 기억하는 내용: 본인이 실제로 떠올릴 수 있는 장면
- 다른 사람에게 들은 내용: 동석자 등이 나중에 설명해 준 사실
- 기록으로 확인한 내용: 메시지, 결제 내역, 이동 기록으로 파악한 사실
저는 이 구분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생각하다 보면, 직접 기억하는 내용처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억지로 채우기보다 확인 가능한 사실부터 정리해야 합니다.

당시 상태를 구별하는 단서
음주 후 기억이 없다면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만 확인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신 속도, 공복 여부, 함께 복용한 약물 등도 살펴야 합니다.
특히 짧은 시간에 많은 술을 마셔 혈중알코올농도가 빠르게 올라가면 블랙아웃 위험이 커질 수 있습니다.
당시 상황은 다음 항목을 중심으로 시간순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시점과 다시 기억이 시작된 시점
- 주변 사람이 확인한 말투, 걸음걸이, 질문에 대한 반응
- 메시지와 통화 내역, 결제 시간, 귀가 경로
- 넘어짐이나 부상, 구토, 깨우려 했을 때의 반응
겉모습에 따른 판단의 한계
CCTV에 혼자 걷는 모습이 있다고 해서 그 시간 내내 정상적인 판단이 가능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다음 날 기억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당시 의식을 완전히 잃었다고 결론 내릴 수도 없습니다.
시간에 따라 상태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대화하다가 이후 의식을 잃을 수 있고, 블랙아웃 상태에서 패싱아웃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한 장면으로 그날 전체의 상태를 설명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준강간 사건에서의 법적 의미
블랙아웃과 패싱아웃은 준강간·준강제추행 사건에서도 등장합니다.
다만 법적 판단의 핵심은 용어 자체가 아니라 문제가 된 행위 당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였는지입니다.
대법원은 의식을 완전히 잃지 않았더라도, 알코올의 영향으로 의사를 형성하거나 성적 침해에 맞설 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됐다면 항거불능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대화했으니 동의한 것이다” 또는 “블랙아웃이니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식의 결론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기억이 없다는 진술만으로 범죄 성립이 자동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음주 과정, 당시 언행, 주변 기록, 성적 접촉의 경위와 상대방의 인식 등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대법원 역시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단순한 블랙아웃이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습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도 같습니다.
기억의 공백과 당시의 동의·판단 능력은 구별해서 검토해야 합니다.
어느 한쪽에 유리한 표현을 붙이는 것보다, 해당 시점의 실제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성범죄 혐의를 받은 경우의 확인 사항
술자리 이후 준강간·준강제추행 혐의를 받았다면, 상대방이 블랙아웃이었는지 패싱아웃이었는지를 스스로 단정하는 것부터 경계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먼저 말을 걸었다”, “함께 걸어서 이동했다”는 사정은 검토할 자료이지만, 그 사실만으로 성적 접촉 당시의 판단 능력이나 동의 여부까지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이때는 상대방의 실제 상태와 본인이 당시 그 상태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구분해서 정리해야 합니다.
단순히 “멀쩡해 보였다”고 설명하기보다, 어떤 대화와 행동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는지 구체적인 근거를 확인해야 합니다.
- 술자리부터 성적 접촉 전후까지의 시간대별 경위
- 상대방의 말과 행동, 의사 표현 및 그에 대한 본인의 반응
- 사건 전후의 대화 원본, 이동·결제 기록, CCTV와 목격자 정보
- 본인이 직접 기억하는 부분과 추측하거나 전해 들은 부분


자료는 유리해 보이는 대목만 골라내지 말고 전체 맥락이 남도록 보존해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반복적으로 연락해 기억이나 진술을 바꾸도록 요구하는 행동도 피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사안을 검토할 때 ‘블랙아웃이니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먼저 세우지 않습니다.
당시 상태를 보여주는 자료와 진술이 맞는지, 법적으로 다툴 부분이 무엇인지부터 살펴야 합니다.
조사를 앞두고 있다면 기억의 공백을 추측으로 채우기보다,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실과 추가 확인이 필요한 부분을 변호사와 구분해 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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